2007년 07월 15일
2nd RING : 제029화 「눈물」
九十八
"그래서…… 이 엄청난 짐을 어떡해야 되는 건데?"
아스카는 귀찮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제7 사도…… 이스라펠을 물리친 그날 밤.
새삼 아스카에게 닥친 것은 주거 문제였다.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NERV 에 살면 된다.
그러나 아스카로 하여금 그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는 이유……
그것이 그녀의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이삿짐 박스였다.
참고로 유니존 훈련 중에는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이 짐들은 비어 있는 옆집에 넣고 방치시켜 두었었다. 지금 아스카·신지·레이·미사토 네 사람이 있는 곳은 바로 그 옆집이다.
"하지만 말이야…… 이거, 유니존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스카가 살던 곳에 들어가 있었던 거잖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면 되는 거 아니야?"
신지가 누구라도 떠올렸을 법한 생각을 입에 담는다.
아스카는 뒤돌아서 째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신지를 봤다.
"……누가 다시, 그렇게까지 치우는 건데."
"……그야, 아스카가."
"……마∼∼……알도 안 된다굿!!"
내뱉듯이 아스카가 말한다.
"너 말이지…… 알고 있어? NERV 의 독실은 있지, 12평짜리 방이 두 개 있을 뿐이라구."
말하면서 아스카는 두 팔을 벌려 척 하고 뒤에 늘어선 산더미 같은 이삿짐을 가리켰다.
아스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신지도 다시 팔짱을 끼었다.
확실히 주거공간을 남기면서 12평짜리 방 두 개에 다 들어갈 만한 양이 아니다.
그러나……?
"……하지만 이거, 전에는 거기에 다 들어갔던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딱 잘라 구분하듯이 대답하는 아스카.
"뒤늦게나마 독일에서 내 나머지 짐들이 도착했거든. 그래서 비좁아졌으니까 넓은 방을 신청했더니 마침 미사토네 집으로 가라고 했었다 이거지."
과연…… 하고 신지는 납득했다.
그래서 「넌 해고 당했다 이거지」라는 말이 나왔던 것이다.
그 타이밍에서 이 집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면 NERV 로부터 정식으로 이 집에 살 것을 지시 받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게 당연하겠지…….
……….
응……?
신지는 한 가지 의문에 이르렀다.
……결국 지난번 인생에서는 유니존 훈련이 끝난 뒤로도 아스카는 계속 우리집에 살았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그럼 그 때…… 이 산더미 같은 짐들은 어떻게 처리했던 거지?
그 때도, 아스카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는 이 엄청난 짐들이 있었다.
하지만 같이 살게 되었을 무렵에는 이미 없었던 것 같기도……?
어라……?
"……이카리 군?"
의아스러운 듯한 레이의 목소리에 신지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어?"
"……왜 그래?"
신지가 옆을 보니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이가 보고 있다.
"응…… 아니…… 그 때는 이 짐을 어떻게 했었던 걸까아, 싶어서 말이야……"
아직도 멍∼한 표정인 채…… 신지는 말을 계속 잇는다.
레이가 잘 모르겠다, 라는 얼굴을 한다.
"……그 때?"
"응…… 유니존이 끝나고, 어떻게 하다 보니 아스카가 우리집에……"
말하다 말고 신지가 굳었다.
신지의 등을 폭포와 같은 땀이 흐른다.
심장이 경종을 울리듯이 빨라진다.
굳어 버린 자세에서 신지의 안구가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레이·아스카·미사토가 의아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신지를 보고 있다.
"……이카리 군?"
"너 말이지 신지, 얘기 듣고 있는 거야?"
"신짱, 무슨 일 있어?"
신지는 들키지 않도록…… 마음속 깊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어…….
요즘 들어서 멍∼하니 있는 것 같단 말이야, 나…….
정신 바짝 차려야지!
"아아,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잠깐 좀 착각했었나 봐요."
머리를 긁적이며 신지는 아하하 하고 웃는다.
미사토는 신지 앞에 서더니 가까이에서 살피듯이 신지의 눈동자를 보았다.
"뭐, 뭐예요, 미사토 씨?"
"신짱…… 엄청난 땀인데. 무슨 일 있어?"
"엇? 아, 아뇨, 덥구나아 싶어서……"
"안 더운걸, 하나도."
"어, 어라? 그래요?"
횡설수설하는 신지.
엉뚱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는 하나…… 추궁 당하게 되면 쓸데없이 더 땀이 난다.
이마와 관자놀이를 따라 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다.
아아…… 큰일이다……
멎어 달라구우…….
이래서는 의심해 달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신짱, 감기라도 걸린 거 아니니?"
미사토가 신지의 이마에 손바닥을 얹는다.
"응∼…… 조금 뜨거운 것 같기도 한걸."
"아, 아뇨, 감기 같은 건 안 걸렸다구요."
뜨거운 것은 아마도 당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뭐야, 그 정도 훈련으로 벌써 뻗어 버린 거야? 참 한심하기도 하지."
아스카가 심술궂게 말한다.
"그러니까 몸은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무슨 말 하고 있는 거야, 그런 새빨간 얼굴로."
그것은…… 그러니까, 당황하고 있기 때문이라구…….
하지만 왠지 화제가 빗겨 가기 시작했는걸…….
이것으로…… 이대로…… 어떻게든…….
"이카리 군!"
어?
"이카리 군! 이카리 군!"
아야나미…… 뭐야?
왜 그러는 거지?
어라……
아야나미……
어디 있어?
………
캄캄해.
九十九
"……과로네."
리츠코는 손에 든 프린트를 넘기더니 얼굴을 들고 그렇게 말했다.
이곳은 NERV 의 진단실.
신지는 안쪽에 있는 집중치료실의 의료침대에 잠들어 있다.
카츠라기 댁의 옆집…… 그 방에서 신지는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보고 있던 세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한창 대화하던 중에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고 한다.
아스카는 물론 놀랐다. 미사토는 그 자리에서의 정확한 판단에 의하여 NERV 의료반의 초빙, 작전부로의 연락, 그리고 리츠코의 대기 등을 신속하게 처리해 냈다.
그리고 레이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것은 이 비상사태에…… 미사토와 아스카의 움직임을 멈추게 할 만큼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보통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거나 혹은 반광란 상태가 된다거나, 혹은……?
어쨌든 격렬한 감정의 발로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혼란, 즉 패닉 상태에 빠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는 달랐다.
처음에 아무도 이상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부터…… 느닷없이 레이는 신지의 이름을 불렀다.
그 직후에 신지는 의식을 잃는다.
그 뒤로는…… 신지 곁에 딱 붙어서 오로지 신지의 왼손을 힘껏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레이의 표정은 공포로 얼어붙어 있었다.
이를테면 이것이 그녀의 「감정의 발로」였다.
지금도…… 레이는 신지 곁을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왔던 것처럼…… 지금도 또한 신지의 왼손을 계속해서 움켜쥐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리츠코의 설명은 미사토와 아스카가 듣게 된 것이다.
"……과로."
미사토는 천천히…… 리츠코의 말을 되풀이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시 한 번…… 말의 의미를 음미하기라도 하듯이.
"3주일 동안은…… 안정을 취해 줘야겠어."
진료기록을 책상에 놓으며 리츠코는 말한다.
"3주일 동안…… 그렇게나?"
"착각하지는 마…… 의식이 돌아오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 아마…… 앞으로 몇 시간쯤 지나면 깨어나지 않을까?
단지, 원인이 과로라면 이쯤에서 푹 쉬게 해 주고 싶네."
"………"
두 사람 사이를 답답한 공기가 에워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스카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훈련을 받고 마찬가지로 출격했다. 피로의 정도는 같을 것이다.
신지 쪽이 출격한 횟수가 많다는 점이라면 그보다도 훨씬 전에…… 신지가 태평스럽게 놀고 다녔을 무렵부터 훈련에만 매진했던 자신은 어떻다는 말인가?
나약한 소리를 한 적도, 피로로 쓰러진 적도 없다.
단순히 신지의 자기관리능력이 허술할 뿐인 것이지는 않은가?
두 사람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미사토가 이러한 태도로 나올 것이라는 것은 그래도 왠지 이해할 수 있다.
미사토는 정에 휘둘리기 쉬운 부분이 있다. 또한 자신에게 취하는 부분도.
독일에 있었던 때를 포함하여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 그것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리츠코이다.
리츠코라면 정확하게 숫자상으로부터 병상을 판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을 내릴 것이다.
「이쯤에서 푹 쉬게 해 주고 싶다」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위화감이 아스카에게 이런 말을 하게 만들었다.
"신지도 참 허약하네에. 몇 번씩이나 출격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과로? 체력이 없는 거 아니야?"
미사토는 아스카의 그 말에 작게 반응했다.
"그만해…… 아스카.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야."
아스카는 발끈한다.
"왜 그러는데…… 나도 열심히 하고 있다구. 퍼스트도 그렇잖아? 과로라니 자기관리를 하지 못했을 뿐. 쓰러지면 걱정 받을 수 있다니 생각이 무르잖아."
"신짱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야."
"그야 그렇겠지."
아스카가 과장되게 두 팔을 벌려 허공을 휘젓는다.
"아무리 그래도 동정을 받으려고 쓰러졌을 거라는 말은 안 해. 하지만 그 녀석에게 너무 무른 게 아니냐, 라고 말하는 거라구. 의식이 돌아오면 다시 평소 때처럼 생활하게 하면 되잖아!"
"그것은, 틀려."
갑자기 리츠코가 입을 열었다.
아스카와 미사토가 놀란 듯이 리츠코를 본다.
"응석을 받아 준다거나 무르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야. 의학적으로…… 3주일 동안의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지."
"정말로? 독일 지부에서 직원이 쓰러졌을 때도 일주일 정도면 돌아와서 일하던걸."
의심스럽다는 듯이 리츠코의 눈동자를 보는 아스카.
리츠코는 똑바로…… 그 눈동자를 되받아보았다.
"그럼…… 표현을 다르게 해서 말해 줄게.
신지 군은…… 그 정도의 안정이 필요할 만큼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하지만…… 그건."
"아스카."
계속 반론하려는 아스카를 미사토가 제지했다.
"아스카…… 네 의견은 옳아. 분명히 똑같이 일하고 있는 너희들과 다르게 신짱 한 사람을 쉬게 하는 건 이상할지도 몰라.
하지만……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스카. 너도…… 신짱이 여기 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계속 봤었더라면……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하고 있는 것은 그렇게 레이나 아스카랑 차이는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다르다구…….
신짱은 계속……
혼자서, 싸우고 있어……"
"미사토."
이번에는 리츠코가 미사토를 제지했다.
미사토도 입을 다문다.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아스카에게 리츠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스카.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야.
신지 군은 수치적으로 봐도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있어.
그 원인이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제쳐놓고, 그것을 회복하는 데에 3주일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상이야."
집중치료실…… 그곳에서 레이는 두 손으로 신지의 왼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가슴 앞에서 감싸안듯이.
신지는 깨어나지 않는다. 레이의 손을 마주잡지도 않는다.
레이는 눈을 크게 뜨고…… 초점이 맞지 않은 채, 얼어붙은 듯한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제는 자신의 마음속에 신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 신지가, 사라져 버린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신지의 손이 지금은 차갑다.
아니…… 보통 사람만큼의 체온은 있다. 죽어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레이에게 있어서는 신지의 존재를, 몹시 희박하게밖에 느낄 수가 없었다.
이 손을 놓으면 신지는 사라져 버린다.
자신의, 눈앞에서…….
그것이 두려워서…… 신지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百
아스카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아스카가 향한 곳은 NERV 의 자료실…….
레벨 1 까지밖에 열람할 수 없는 아스카에게 있어서는 그다지 대단한 것은 찾아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정보가 필요했다.
아스카가 필요로 한 것은 신지의 자료이다.
독일에 있던 시절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었을 뿐이지 신지에 대한 것 따위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까 전의 미사토와 리츠코의 대화는 아스카의 뇌리에 목에 걸린 잔뼈와 같은 감촉을 남겼다.
신지가 뭘 했다는 거지?
들은 적이 있는 것은…… 싱크로율이 높다는 것과 지금까지의 사도는 신지가 쓰러뜨렸다는 것.
그 이외에는 모른다.
그것만이라면 그렇게 대단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야. 나라도 처음부터 일본에 있었다면 모든 사도를 쓰러뜨려 보이겠어.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야……?
자료실 문의 슬릿에 ID 카드를 긁는다.
철컥…….
문의 잠금장치가 작은 소리와 함께 열렸다.
진단실에 남은 리츠코와 미사토는 말없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리츠코가 입을 연다.
"미사토…… 그런 이야기를 해도 아스카에게 괜한 의심을 품게 만들 뿐이야."
"알고 있어."
고개를 숙인 채 미사토가 짧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역시 신짱은 우리보다 몇 배는 더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무엇을, 이라고 한다면 입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가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구.
우리는 그것을 돕지도 못해.
그가 쓰러질 정도로 지쳐 버릴 때까지…… 아무 것도……"
"그만해."
미사토의 말을 리츠코가 끊었다.
그대로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미사토, 네 나쁜 버릇이야. 자신을 그렇게 탓함으로써…… 도망치고 있을 뿐."
"………"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
그 외에 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지?
정말로 필요하다면 그 쪽에서 손을 내밀었을 거야.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다는 거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인 거야."
"……그럴지도 몰라."
낮은 목소리로 미사토가 중얼거린다.
"하지만……
도와 줄 수 있다면……
도와 주고 싶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까?"
"……아니."
리츠코는 대답하고 다시 한 모금 커피를 홀짝거렸다.
百一
삐잇……
삐잇……
삐잇……
삐잇……
의료침대로부터 뻗어나오는 코드들이 다다르는 곳에서 계측기들이 차가운 전자음을 내고 있다.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정적의 세계.
레이는 그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그저 신지의 왼손을 계속해서 움켜쥐고 있었다.
이 상태가…… 몇 시간이나 계속되고 있을까?
영원히…… 이 때가 계속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때.
"!"
레이는 몇 시간만에…… 흠칫 하고 몸을 움직이고 신지의 얼굴을 보았다.
그대로 또다시 정적……
"…………………………으……"
"!!!"
벌떡 하고 신지 쪽으로 몸을 내민다.
신지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몇초 후 살며시 눈을 떴다.
으……
머리가 무거워……
역시, 감기인 걸까아……?
………
그렇지……
아야나미가, 불렀었어……
대답해야 돼……
"……아야나미."
아직 시선이 초점을 잡기도 전에……
신지는 레이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맹렬한 무엇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방법을 거의 몰랐던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느껴 본 적이 없는 감각이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뜨겁고……
미칠 것 같고……
사랑스럽고……
애절하고……
그것은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 나가 앗 하는 사이에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이……카, 리…… 구……"
깨어난 순간에 신지의 이름을 부르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방해하듯이 말이 목구멍을 지나는 것을 거부했다.
깨어난 순간에 신지의 모습을 응시하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
수영장 물 속에서 천장을 본 것처럼…… 신지의 얼굴이 심하게 흐릿해서 곧바로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기쁜데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사랑스러운데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안타깝고…… 사랑스러워서……
레이는 그 존재를 확인하듯이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신지의 가슴에 와락 매달리고 있었다.
신지는 놀라고 있었다.
충격으로 급속히 뇌세포가 각성되어 간다.
직전의 기억은 카츠라기 댁 옆의 그 빈집에서의 광경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NERV 의 집중치료실……
지난번에 몇 번인가 본 기억이 나는 천장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신지를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품에서 흐느껴 우는 소녀였다.
"으……아……에에………으……아윽…………으으……"
레이는 목에서 새어나오는 목소리를 죽이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레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쏟아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무엇이…… 슬픈 것일까?
이 눈물은…… 무엇?
지금까지…… 눈물을 흘렸던 적 같은 것은 없었다.
이렇게나……
격렬한 마음에……
마음이 뒤흔들렸던 적도……
……없었다.
붙들고 있는 신지의 가슴이 분명하게 따뜻하다.
바싹 대고 있는 귀에서 힘찬 고동이 들린다.
그것이 기뻤다.
참을 수 없이 기뻤다.
모든 빛깔을 잃어 버렸던 세계가…… 신지의 가슴으로부터 또다시 넘칠 것만 같은 색채를 되찾아 간다.
모든 소리를 잃어 버렸던 세계가…… 신지의 고동으로부터 또다시 생명이 넘치는 음색을 되찾아 간다.
끝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저 그 가슴에 뺨을 꾸욱 누르듯이 대고 있었다.
앞뒤 상황을 알지 못한 채…… 신지는 당황하고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추측하건대 자신은 거기서 의식을 잃었던 모양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역시 감기였던 것일까?
어쨌든…… 얼마만큼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의식을 잃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야나미…….
아야나미가 이렇게 우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다…….
어쩐지…… 갓난아기가 우는 것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울고 있다.
아야나미…….
"걱정…… 끼쳤구나."
신지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품 안에서 우는 레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레이는 눈물로 뺨을 적신 채 신지를 올려다보았다.
신지는 미소짓는다.
"……………으……"
또다시 넘쳐 흐르는 눈물이 레이를 덮치고…… 비비대듯이 신지의 가슴에 뺨을 대고 누르면서……
……또다시 울었다.
이윽고……
몇 분 뒤, 조용한 숨소리가 방 안에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다.
레이는 신지의 가슴에 매달린 채……
울다 지쳐서 잠들어 버렸다.
신지는 울고 있는 동안에도…… 잠들어 버리고 나서도……
언제까지나, 부드럽게…… 레이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고 있었다.
百二
아스카는 단말기 위에서 그 부드러운 손끝을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야와 리츠코에 비하면 그 입력속도는 결코 빠르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직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속도는 경탄할 만했다.
여기서도 그녀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다.
……적어도 신지와 레이라면 검지로 더듬더듬 입력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응∼……"
아스카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더니 등받이에 체중을 싣고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히 신지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것은 공식기록의 표면적인 기술에서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말이야아……"
말하면서 아스카는 다시 한 번 이력을 화면 위로 끌어냈다.
제3 사도…… 사키엘 전.
첫 탑승에서 82.7% 라는 높은 싱크로율을 기록. 동시에 놀라운 조종을 하여 사도를 압도. 전개하는 방법이 밝혀지지 않았던 AT 필드를 전개하고, AT 필드의 형태의 변화와 용도의 응용 등도 그 자리의 임기응변으로 실행한다. 이 한 번의 싸움에 의하여 나머지 두 대의 파일럿이 AT 필드를 전개하기 위한 기초연구가 가능해졌다.
제4 사도…… 샴셸 전.
예측을 뛰어넘는 사도의 속도에 농락 당하면서도 내부전원이 끊어지기 수십 초 전에 사도를 섬멸. 명령을 거부하는 등 몇 가지 문제가 보이기는 했으나, 전투 중에 민간인을 구출, 섬멸 방법을 확립할 수 없었던 사도의 공격을 스스로의 임기응변에 의해 봉인하는 등 특필할 만한 점도 있다.
제5 사도…… 라미엘 전.
퍼스트 칠드런과 팀을 이루어 전투. 작전 자체에 몇 가지 갖추어지지 않은 점이 있어 영호기가 손상을 입기도 했으나 사도를 섬멸. 위험한 상태에 있던 퍼스트 칠드런을 구조.
……굉장하다고 하면 굉장하다.
분명히 굉장하다.
하지만……
"……랄까, 뭐, 보통이라면 보통이란 말이지."
팔짱을 끼면서 재미없다는 듯이 아스카가 말한다.
"분명히…… 훈련을 전혀 안 했었던 거니까 조금은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지도 않다구…….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지? 과로로 쓰러질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야."
똑같은 경우에 처한다고 한다면 자신도 또한 똑같이 해 보이겠다는 자부심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을 만한 일이 뭔가 있는 걸까?
아스카는 그 뒤로도 한동안 키보드를 두드렸었으나, 결국 그녀가 이 이상의 정보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자료실을 나오며 슬릿에 ID 카드를 긁는다.
철커덕.
소리를 내며 잠금장치가 작동한다.
아스카는 카드를 눈앞에 들어올리며 보더니 작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더…… 레벨이 높은 카드가 필요하겠는걸……"
신지는 의식을 되찾음으로써 집중치료실에서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미안해, 신짱. 아스카는 집에 가 버렸지 뭐니."
미사토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실제로는 이 시간에는 아직 아스카는 NERV 에 있는 것이었으나 그것을 그녀가 알 도리는 없다.
"괜찮아요, 별로 뭐…… 대단한 일도 아닌걸요."
신지도 침대 위에서 마찬가지로 쓴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아까까지 의식이 없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몸 상태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레이는 눈이 부은 채 신지의 옆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지와 눈이 마주치자 한 순간 눈으로 미소짓는다.
미사토는 내심 몹시 놀라고 있었다.
계측기의 결과로부터 신지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급하게 집중치료실에 들어왔더니 신지의 가슴에 레이가 매달려 있었다.
한 순간 「안 좋은 타이밍에 와 버렸나?」하고 망설였지만, 방에 들어온 미사토를 신지가 알아차리자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나서 손짓을 한다.
그래서 발소리를 죽이고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레이를 봐 보니……
거기에는 눈물에 젖은 채 잠들어 있는 소녀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레이가 「울다 지쳐서 잠들어 버렸다」는 것은 명백하다.
………
……울다 지쳐서……?
……지쳐서 잠들어 버릴 만큼…… 레이가 울었단 말이야?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당황하여 신지의 얼굴을 보고…… 신지가 레이를 바라보는 그 표정을 보고…… 미사토는 이해했다.
그들 사이에 이어져 있는…… 유대의 강인함에.
그러나 동시에 여린 부분도 느끼고 있었다.
유대가 굵고 단단하기 때문에…… 그것이 끊어졌을 때의 공포.
모든 것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을 정도의…….
그러나 미사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찾아내고 그들이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라고 해도, 신짱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미사토는 허리를 뻗어 앉아 있는 레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레이…… 이제 그만 돌아가자. 신짱은 피곤할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순식간에 어두운 표정이 되는 레이.
"………"
"레이…… 알고 있잖니. 여기에 있는 것보다도…… 오늘은 푹 쉬게 해 주는 편이 신짱을 위한 거라구."
"…………………………네."
작게 대답하고 나서 레이는 천천히 일어났다.
"……이카리 군."
이름을 불려서 신지는 미소짓는다.
"괜찮아, 아야나미.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멀쩡한걸."
"응……"
말하면서 신지의 손을 쥔다.
"어서…… 나아 줘."
"으…… 응. 고마워."
헤어지기 섭섭한 듯이 신지의 손을 놓더니…… 레이는 미사토에게 이끌려 병실을 나갔다.
"후우……"
신지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한 번 베개에 깊숙이 머리를 파묻었다.
과로라…….
리츠코 씨는 「육체적인 것보다도 정신적으로 피로해 있다」라고 했었지…….
정신적인 피로, 라…….
역시 혼자서만 한다는 것에 무리가 있는 걸까아.
하지만…… 섣불리 말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말하면……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돼.
그것은 피하고 싶어…….
아야나미에게…… 말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아야나미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아야나미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밝히게 돼.
그것에 대해서…… 말해야 할지 어떨지, 아직 나로서는 알 수가 없어…….
아야나미는 극복할 수 있을까?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재료가 너무나도 부족한 거야…….
아야나미……
언젠가…… 분명히 말할 때가 올 거야.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야나미를 위해서도.
하지만……
지금은…… 아직…… 말할 수 없어.
그런…… 느낌이 들어…….
百三
결국 짐을 옮기기 귀찮아하던 아스카는 그대로 비어 있는 옆집에 살기로 했다.
세 집이 나란히 레이, 신지 & 미사토, 아스카의 순서로 늘어서게 된 것이다.
아스카에게 깊은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그저 단순히 귀찮았을 뿐이다.
미사토는 기뻐하고 레이는 어딘지 모르게 언짢았다.
어쨌든 어떤 의미로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그 날 저녁은 미사토가 카레를 준비했다.
……그리고 신지가 평온하게 잠들어 있을 무렵, 카츠라기 댁에서는 아비규환의 지옥과도 같은 참상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 by | 2007/07/15 22:14 | 번역 : 소설 (2nd RING)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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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실력만큼은 어떤 의미로 사도급인 미사토일지도 모르겠군요. ;;
하얀미르 님 >>
그러고 보니 그런 명대사(?)가 있었던가요. ^^;
새로운 극장판에서는 캐릭터들이 어떻게 살아 숨쉴지 기대가 됩니다.
퍼스트는 레이 아닌가요?? 흠...
네, 레이가 맞습니다. 현 시점에서 아스카가 레이를 부를 때는 퍼스트라고 부르죠.
(원작만큼 혐오하는 상대가 아니다 보니 그래도 동등하게 봐 주고 있는 건지도요)
아아, 그런 거였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