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5월 12일
2nd RING : 제020화 「진로」
四十四
특무기관 NERV·사령관 공무실.
비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면적을 가진 이 방에 지금은 단 한 명의 남자밖에 없다.
이카리 겐도우…… NERV 총사령관.
겐도우는 책상 위의 수화기를 손에 들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자네인가."
"간만입니다…… 마음에 드셨나 모르겠군요."
수화기 너머로 묘하게 가벼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겐도우를 대하면서 이와 같은 말투로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 따위가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겐도우는 그것에 대하여 특별히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다.
겐도우의 책상 위에 수십 장의 서류 다발이 보인다.
뭔가 거대한 기계와 같은 것의 설계도와 자료이다.
겐도우는 계속해서 말한다.
"그렇군…… 문제 없다."
"그거 감사하군요."
"……또 자네에게 빚을 졌군."
"갚을 생각도 없으시죠?"
수화기 너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웃는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예의 물건은. 이쪽에서 손을 쓸까요?"
"아니. 자네의 자료를 보는 한 문제는 없을 거다."
"그럼, 시나리오대로."
"음."
겐도우는 그렇게 말하더니 전화를 끊기 위해 한 순간 귀에서 수화기를 뗀다.
"그러고 보니……"
그러나 남자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겐도우는 말없이 수화기를 다시 귀에 가져갔다.
"자제 분의 소문, 들었습니다."
"………"
"상당한 성적이라고 하더군요."
"시시하군. 끊는다."
"아니,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아스카와 함께 그쪽으로 찾아뵈었을 때 만나는 게 기대되는군요."
"………"
"……이것도, 시나리오대로입니까?"
겐도우는 수화기를 귀에서 떼더니 가만히 테이블 위의 전화기에 내려놓았다.
딸칵…… 하고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그것을 끝으로 방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四十五
카츠라기 댁에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론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신지이다.
신지는 파를 빠르게 썰더니 푼 계란에 섞어 나간다. 가볍게 기름을 깐 프라이팬에 그것을 흘러넣자 쥬와앗― 하는 소리와 함께 부엌에 아침의 냄새가 퍼져 나간다.
집 주인인 미사토는 아직도 태평스럽게 자고 있는지 거실로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느 때와 같은 카츠라기 댁의 아침 풍경…….
그러나 오늘은 확연하게 평소와 다른 점이 하나.
신지는 미소시루의 상태를 바라보면서 달걀부침을 세 장의 접시 위에 나눠 간다. 접시 위에 작은 토마토 토막을 하나씩. 밥과 미소시루를 각각 그릇에 담아서 쟁반 위에 한꺼번에 올려 거실로 이동했다.
(역자 주: みそ汁. 미소시루. 일본식 된장국. 우리나라의 된장국과는 다른 음식이기에 고유명사로 표시했습니다)
신지는 미소와 함께 그곳에 있는 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다 됐어. 기다렸지, 아야나미."
거실의 테이블 앞에 앉아 가만히 부엌 쪽을 응시하던 레이는 신지가 나타나자 표정이 살며시 부드러워졌다.
……그것은 신지가 아니면 알지 못할 정도의 변화.
신지만이 알 수 있는…… 미소짓는 표정.
"……후와아아∼…… 잘 잤니이."
미닫이문이 열리고 머리를 긁적이면서 커다란 하품을 하며 미사토가 등장.
……폭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식사 냄새로 잠에서 깨어나는 부분이라든지는 인간보다도 동물을 방불케 한다.
"미사토 씨, 거기…… 눈곱이 껴 있어요."
"응아…… 미안, 잠깐만 기다려 줘∼……"
또다시 커다란 하품을 하면서 세면소로 사라지는 미사토.
신지와 레이는 테이블 위에 밥상을 차려 나간다.
딱 1분이 지나서 냉수로 간신히 잠이 깬 미사토가 자리에 앉아 카츠라기 댁의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제 옆집으로 이사 온 레이는 오늘부터 저녁 식사와 아침 식사, 양쪽 모두 신지의 집에서 먹게 되었다.
레이가 그다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아침은 먹기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지는 그런 레이의 모습을 보다 못해…… 결국 도시락도 겸해서 세 끼를 준비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사토 씨, 오늘 정말로 학교에 올 거예요?"
미소시루가 든 그릇을 들면서 신지가 미사토에게 묻는다.
미사토는 입 안에 넣은 달걀부침을 삼키고 나서 씨익 하고 웃었다.
"당연하잖아, 진로상담인걸."
"진로상담이라고 해도……"
"왜?"
"왠지…… 실감이 안 나잖아요. 사도가 오는 이상 어차피 평화로운 생활은 보내지 못하는 거니……"
신지가 평화로운 미래를 바라고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자신의 평화로운 미래」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막연한 것이 되어 버린다.
자기자신의 미래를 가볍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자신의 일보다도 레이의, 아스카의, 미사토의…… 모두의 미래가 보다 더 신경 쓰이고 있기 때문임에 다름 없었다.
"뭘 또 답답한 소리를 하는 거니! 젋으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지."
미사토가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말하더니 척 하고 손가락 끝을 신지의 코끝에 들이댄다.
신지는 무의식중에 뒤로 몸을 젖혀 버린다.
"아직 중학생이잖아? 앞으로의 미래는 반짝이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우."
"네, 네에…… 죄송합니다."
신지는 자세를 고쳐 앉더니 겸연쩍은 듯이 미소짓는다.
"응!"
미사토는 다시 미소짓더니 두 그릇째의 밥을 맛있게 입으로 가져간다.
신지는 가슴 속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아무리 밝은 미래를 몽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일이 있다는 것을 신지는 몸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지를 기운내게 하려는 미사토의 배려가 기뻤고, 밝은 미래를 향해 노력하는 모습도 기뻤다.
지난번, 이 무렵의 자신은 깨달음을 얻은 듯한 교만한 기분으로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세계는 멸망해 버렸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힘낼 수 있어.
신지는 가슴 속에서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힘내 보이겠어……!
딩도―옹.
초인종이 울린다.
미사토는 일어나더니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세요…… 어머, 좋은 아침. 그래…… 잠깐만 기다릴래?"
그런 미사토의 말을 들으면서 신지와 레이는 재빨리 설거지칸에 자신의 식기를 담궈 나간다.
아마도 토우지와 켄스케가 마중하러 온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 신지는 NERV 에서 도망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켄스케와 토우지는 아직 미사토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지난번 상사와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아 신지는 두 사람에게 사진을 보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만나게 해(혀) 주라∼""
그것이 사진을 본 두 사람의 처음 한마디였다.
(켄스케는 그렇다쳐도, 토우지한테는 호라키 양이 있잖아) 라고 있는 힘껏 따지고 싶어질 뻔했지만, 뭐, 만나게 하는 정도라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지는 「아침에 마중이라도 와 주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이 마중을 와 주고 있는 것인데……
신지는 미사토 쪽을 돌아보았다.
"응? 왜애∼?"
혼자서 세 그릇째의 밥을 담는 미사토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신지를 본다.
배꼽, 이라기보다도 배를 다 드러낸 모습으로 아직 빗질도 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 세수하기만 한 얼굴에 식사를 허겁지겁 먹는 모습…….
하아, 하고 한숨을 쉰다.
아무리 미인이라고 하더라도 이 모습을 반 친구들에게 보이는 것은 자신도 싫었고, 토우지들도 싫을 것이고…… 아마 미사토도 싫을 것이다.
"그런 차림으로 나오지 말아 달라구요."
"알∼았다니까! 오후에는 갈게, 잘 다녀와∼"
팔랑팔랑 하고 한손을 흔드는 미사토를 남기고 신지와 레이는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 만면에 웃음을 띤 얼굴로 켄스케와 토우지가 신지를 맞이했다.
"좋은 아침, 이카리!" 씨이익!
"오오, 좋은 아침이여, 신지!" 씨이익!
"조, 좋은 아침, 둘 다……"
무의식중에 입가를 꿈틀꿈틀 떨면서 압도 당하듯이 인사를 받는 신지.
토우지와 켄스케는 그런 신지의 모습도 신경 쓰지 않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연거푸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가?"
"미사토 씨는?"
기대에 가슴을 떠는 두 사람.
신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짐짓 매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아, 미사토 씨? 어제는 일이 늦게 끝나서 방금 전에 일어났거든. 그래서…… 두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는 했었는데, 조금 더 제대로 된 모습일 때 만나고 싶대."
반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은 거짓말이다.
신지는 두 사람이 온다는 이야기는 미사토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숨기고 있었던 것도 아무 것도 아니라…… 쉽게 말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뭐…… 아야나미의 이사라든지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까 말이야)
신지는 생각한다.
그에 반해 토우지와 켄스케는 바닥에 털썩 쓰러져 손을 짚으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뎌는…… 미사토 씨를 뵙는 것먼을 삶의 보람으로 오늘꺼지 살어왔다고 허는디 말이여……"
거짓말 마!
"그래…… 나도 이 날을 위해 풀 튠업을 한 디카를 준비해 왔다는데 말이야……"
""하아아아아아아아아∼∼∼∼∼∼∼∼……………""
땅속에 울려 퍼질 것 같은…… 그러면서 약한 바람에도 날아가 흩어져 버릴 것 같은 어두∼∼운 한숨.
어쩔 수 없이 신지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오늘 미사토 씨랑은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은 울먹이는 눈으로 신지를 올려다보았다.
"……워째서여?"
"오늘 진로상담이 있잖아. 그래서 미사토 씨가 올 거거든."
"……오, 오, 오오∼!? 진짜냐!?"
환희의 표정으로 순식간에 일어서는 두 사람에게 저도 모르게 두세 걸음 물러나면서도 끄덕이는 신지.
"그, 그렇구나∼…… 그렇다면, 더군다나 외출복!"
"뭐, 뭐어…… 그렇게 되겠지."
""최고야아(여어)∼!!""
방금 전까지의 낙담은 무엇이었던 것인지…… 지금 이 순간에도 두 사람의 머리 위에는 하늘의 구름 사이로부터 비추는 빛과 함께 아름다운 천사들이 내려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동안 그렇게 기쁨에 잠겨 있는 두 사람을 신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신지…… 니 아부지가 계시잖으? 워째서 미사토 씨가 진로상담을 받으러 오는 거여?"
흥분이 가라앉았을 무렵에 토우지가 문득 신기하다는 듯이 물어 왔다.
"아니, 아버지는 바쁘기도 하고…… 이런 일로 올 사람이 아니거든."
"그렇구먼……. 뭔가 잘은 모르겄지먼, 신지도 여러 가지로 고생이 많겄으."
"뭐, 그렇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랑 아야나미의 보호자는 미사토 씨라는 걸로 되어 있는 거야."
"그렇구먼…… 응?"
"응?"
의아스럽다는 듯이 신지를 보는 토우지와 켄스케.
신지는 신기하다는 듯이 두 사람을 본다.
"왜, 왜 그래? 둘 다."
"……지금, 니, 뭐라고 혔나?"
"뭐, 뭐가?"
"아야나미도 미사토 씨가 보호자라고 혔던 것 같은……"
"아아, 그랬지…… 근데?"
좀처럼 두 사람의 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긴장감이 빠진 대답을 하는 신지.
문득 시선을 켄스케 쪽으로 돌리니…….
"………"
(켄스케?)
켄스케는 신지를 보고 있지 않다. 말없이 눈을 크게 뜬 채 신지의 뒤를 보고 있다…….
"켄스케?"
말하면서 신지는 켄스케의 시선 끝으로 눈길을 보냈다.
그곳에는 신지의 등에 바싹 달라붙어 몸을 숨기듯이 서 있는…… 붉은 눈동자의 소녀가 한 명…….
(아……)
신지는 당황해서 켄스케 쪽을 다시 돌아본다.
켄스케는 먹구름을 등에 지고 서 있었다.
안경 너머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땅속으로부터 올라오는 듯한 목소리로 한마디…….
"……배신자."
"아, 아니라구! 오해야!"
"……배신자."
"토, 토우지까지, 무슨 말을."
"……배신자."
"아, 아니, 그러니까 있지. 함께 살고 있다는 건 아니고……"
"……배신자."
"그, 그러니까, 말 좀 들어 줘!"
"……배신자."
"그, 그러니까아…… 라니, 어, 아야나미, 왜?"
"이카리 군…… 학교 가자."
"어, 아, 으, 응……"
"……배신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러니까, 토우지한테는 호라키 양이 있잖아아!)
"……배신자아…… 으으."
(케, 켄스케…… 미, 미안……한 건가아?)
四十六
학교를 향해 가는 동안에 계속해서 신지는 토우지와 켄스케에게 간신히 사실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레이와 함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레이가 옆집에 이사 온 것이라고.
그것만 하더라도 토우지와 켄스케로서는 충분히 배신자 행위와 다름 없는 것이었으나, 신지와 레이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명백했기 때문에 앞으로 사흘 동안의 점심값으로 흔쾌히 손을 쓰는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과후.
수업은 종료되었으나, 진로상담을 앞두고 반의 학생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 켄스케, 저것 좀 봐 보라!"
갑자기 토우지가 큰 소리를 냈다. 토우지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
이에 켄스케도, 흥미를 가진 다른 학생들 몇 명, 그리고 신지는 창가로 다가가서 밖을 보았다.
아래 쪽에 보이는 주차장에 한 대의 르노가 지금 막 멈춰 서 있었다. 몇 초가 지나고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하이힐을 신은 다리가 스윽 하고 나온다.
""오오오오오∼옷!!""
토우지와 켄스케의 환희에 찬 외침.
르노의 문을 닫으며 넉넉한 흑발을 쓸어올리며 돌아보는 것은 정장에 몸을 감싼 미사토였다.
""미, 미, 미사토 씨다아∼!!""
토우지와 켄스케의 환희에 찬 외침.
어느새 준비했는지, 켄스케는 비디오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미사토의 일거수 일투족을 빠짐없이 녹화하고 있다.
"아아∼ 역시 좋구머언, 미사토 씨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잖으!"
"저러면서 NERV 의 작전 본부장! 틀림없이 재색겸비! 하늘은 두 가지를 동시에 내려 주었단 말인가∼!"
두 손을 마주하고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젓는 것처럼 눈을 감는 토우지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정보를 또다시 얻어서 알고 있는 켄스케.
"……스즈하라."
교실의 반대쪽 구석에서 히카리는 조금 쓸쓸한 듯이 그런 토우지의 모습을 보고 있다.
"에에에, 엄청난 미인! 저 사람 누구야!?"
"뭐지, 누군가의 진로상담을 받으러 왔다 이건가? ……엇, 이카리?"
"이카리의 보호자…… 저 미인이?"
"설마…… 함께 살고 있는 거야?"
환희와 교성과 질투와 의망이 뒤섞인 소동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다.
교실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이 천천히 신지 쪽을 돌아보았다.
신지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어색하게 미소짓는다.
"뭐, 뭐…… 뭘까? 모두들…… 아, 아하하하……"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모두의 시선은 온갖 색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카리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용서 못한다∼! 안 그래도 아야나미 양과 러브러브인 주제에에에에!!)
(이카리 구∼운! 나란 사람이 있으면서도…… 연상의 여성과 동거라니…… 분해애애애애! 끼이이∼잇!)
짝, 짝.
"자아, 여러분…… 진로상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초로의 담임이 손뼉을 치면서 들어온다.
"순서가 와서 호명 받은 사람 이외에는 복도에서 대기해 주세요. 자, 그럼 교실에서 나가시고……"
"네, 네에!"
이것 참 다행이라면서 신지는 가장 먼저 교실을 나간다.
그 뒤를 쫓듯이 따라 나가는 레이를 보며 교실 안에 있는 모두의 얼굴은 부러움인지 단념인지도 알 수 없는 한숨을 살며시 쉬는 것이었다.
진로 지도는 출석번호 순으로 실시된다.
남녀 구분이 없는 50음 순으로 첫 타자인 켄스케에 이어 두 번째는 레이이다.
(역자 주: 50음. 일본의 기본 글자인 히라가나를 기준으로 아이우에오 순)
드르륵 하고 교실의 문이 열리며 켄스케가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나온다.
"실례했습니다…… 아, 아아냐미 다음이야."
"……응."
"고마워 아이다 군. 레이, 들어가자."
켄스케의 말에 레이와 미사토가 대답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특별히 아무렇지도 않은 풍경…….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자는 말을 건 켄스케를 포함하여 모두가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다.
켄스케는 레이가 사라진 문을 응시한 채 복도에 늘어서 있는, 지금까지 레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신지의 옆자리에 앉는다.
"이카리……"
"응……?"
"아야나미…… 지금, 대답한 거지……"
"아아….. 그렇네."
레이는 노력하고 있다.
신지는 그것을 느꼈다.
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걸.
"아야나미 양의 성적은 매우 좋군요……"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담임교사가 눈앞에 있는 노트북의 키를 누르면서 말하고, 미사토가 그것에 응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학하신다고 한다면…… 아직 시간도 있고, 이 성적이라면 뭐 어디에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정말이에요!? 레이, 잘 됐구나!"
미사토는 활짝 웃으며 옆에 앉은 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레이는 특별히 기쁜 것 같지도 않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다.
미사토로서는 그것은 충분히 예상되었던 반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레이, 어딘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는 없니? 그게 아니라면 하고 싶은 일이라든지……"
"……딱히,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겠지, 라고는 생각했던 미사토였으나, 그래서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것이다.
"너 말이야아…… 젊은 애가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
"………"
"뭔가 말이지…… 그래, 하고 싶은 일을 아직 못 찾았다고 하더라도…… 맞아 그렇지, 레이, 대학에 갈 생각은 있니?"
"……별로."
"별로라니∼……"
대화가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
미사토는 한숨을 쉬더니 몇 초 생각하고 나서 문득 생각난 듯이 얼굴을 들었다.
"레이, 예를 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결정해야만 한다면 어때? 지금 결정한 진로로 반드시 가야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니?"
미사토의 제안은 레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레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잠시 동안의 침묵.
미사토는 무시 당했나…… 하고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매듭지으려 했다. 그 때.
"……저는."
레이가 입을 연다. 놀란 듯이 미사토는 레이의 얼굴을 응시했다.
"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지……
하고 싶은 일……
저에게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요…….
이카리 군과 함께 있고 싶어……
그것이 저의 바람.
이카리 군이 진학한다면 저도 하겠어요.
이카리 군이 가는 고등학교에 저도 가겠습니다.
이카리 군과, 죽을 때까지, 계속 함께 있고 싶어.
그것이, 저의, 바람, 입니다……"
四十七
이어서 신지의 차례가 된다.
또다시 미사토와 함께 교실에 들어간다.
"이카리 군의 성적도 나쁘지 않군요……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라면 노려 볼 만하겠습니다."
담임교사가 말한다.
신지의 성적은 중상(中上)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중상이라고 해도 신지의 능력은 아마도 훨씬 더 높을 것이다. NERV 와 겸임…… 달리 말한다면 일과 학업을 겸한 생활에서 공부에 힘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한가로운 날이면 토우지와 켄스케와 노는 일이 많다. 신지에게 있어서 그들과의 학교 생활을 만끽하는 것도 지난번 즐기지 못했던 만큼 보다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신지는 공부하는 것에도 어떠한 종류의 기쁨을 찾아냈다.
지난번에는 학교 생활이 어떻다 하기 이전에 공부는 손에 잡히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방 안에 틀어박혀 교과서를 펼쳤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부를 하고 싶어서 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틀리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몸에 익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지난번에 소홀히 했던 모든 것이 지금의 신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모든 것을 다 떨쳐 버리고 공부할 만큼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물론 학년의 상위권에 진입할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지난번의 신지는 학업에 있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에 비한다면 훨씬 좋은 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도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라면 진학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네, 신짱. 어떻게 할래?"
미사토가 묻는다.
그러나 신지는 굳이 명확한 답을 회피했다.
"아직…… 어디에 가는 것이 좋을지 정하지 못하겠어요……. 수험도 지금 당장인 것은 아니니."
"진학하는 것은 틀림없나요?"
"아마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해야만 하는 상황은 아니다. 진학할 학교를 결정하지 못한다고는 하나 진학하지 않고 취직한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이니까 천천히 결정하는 게 좋겠지요. 이카리 군, 카츠라기 씨, 수고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복도로 나와 교실문을 닫는다. 이어지는 출석번호에 해당되는 학생이 일어나 보호자와 함께 교실로 들어간다.
"형식적으로라도 대답해 두지 그랬어."
미사토가 조금 불만스럽다는 듯이 신지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아침에 말했던 것처럼…… 역시 앞으로의 일 같은 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니?"
"아뇨…… 그게 아니에요. 단지 조금 더 생각하고 나서 결정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평화가 찾아오지 않으면 결국 진학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지난번에는 결국 그랬다…….
자신의 미래를 모르는 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자신의 미래를, 그리고 모두의 미래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도……
사도와의 싸움에는 이겨야만 해.
그러기 위해서도 난 노력해야만 해.
……자신의 진로 같은 것은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 생각하면 돼.
"충분히 생각해서 결정하고 싶을 뿐이에요."
신지는 되풀이하듯이 말한다.
미사토는 그런 신지의 옆얼굴을 보고 나서 흐∼응 하고 중얼거렸다.
"뭐, 소극적인 게 아닌 것 같아 안심했어. 하지만 신짱의 진로가 정해지지 않으면 레이의 진로도 안 정해진단 말이지∼"
"네? 왜요?"
"신짱이랑 함께 있는 게 좋다고 하는걸."
"에……"
"죽을 때까지 함께 있고 싶대∼"
신지는 레이의 의지를 알고 놀랐다.
물론 신지도 그랬으면 한다.
남은 인생 전부를 레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야나미도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아니, 몰랐던 것은 아니다.
어렴풋이 느꼈던 일.
하지만 이렇게 말로 들으니……
"차라리 신짱한테 영구 취직 해 버리면 될 텐데 말이야∼"
"에에엣!?"
미사토의 고의적인 말에 신지는 무심코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복도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같은 반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신지와 미사토에게 집중되어 있다.
신지는 창백해져서 당황하며 목소리를 낮춘다.
"미, 미사토 씨잇! 큰 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말아 달라구요……"
"어머어? 뭔가 찔리는 부분이라도 있었나?"
히죽히죽 웃으며 필요 이상으로 큰 목소리를 내는 미사토.
"미, 미사토 씨……!"
"뭐얼, 쑥스러워 하는 거니이? 레이랑 둘이서 이불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사람이, 그러언∼……"
빠직!
공기가 얼어붙었다.
표정을 굳힌 채 천천히, 어색한 동작으로…… 신지는 모두가 있는 쪽을 돌아본다.
"배…… 배……"
"케, 켄스케? 무, 무슨 일이……"
"배신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켄스케의 절규를 들으면서 머리를 감싸는 신지.
미사토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
바로 그 때…...
"어머, 레이∼ 지금…… 신짱이랑 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다아∼"
미사토의 목소리에 모두가 복도 끝 쪽을 향한다.
그곳에는 화장실에라도 다녀왔던 것일까?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멀뚱거리는 얼굴로 레이가 서 있다.
"이카리 군과…… 저의, 이야기……?"
"그래 맞아∼"
곁에 서 있던 히카리가 확 하고 레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 있잖아! 레이 양!"
"히카리 양…… 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사토는 흥미가 깊다는 듯이 턱을 만지작거렸다.
(흐∼응…… 레이, 학교에도 제대로 친구가 있잖아)
그런 미사토의 생각과는 관계 없이 히카리가 말을 계속한다.
"레이 양…… 이카리 군이랑, 저기…… 에에…… 그…… 마, 마지막, 까지…… 가 버렸다거나 그래?"
"마지막? 모르겠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이.
"마지막이라고 할까, 저기…… 응∼…… 아, 알몸으로 서로 껴안았다거나……"
히카리의 말에 레이는 볼을 조금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에…… 그, 그…… 그런 거야?"
"……응."
머리를 감싸고 웅크리는 신지.
"이카리 군…… 따뜻하니까."
모든 반 학생들의 질투와 증오의 시선.
그 중에서도 유달리 강한 것은……
"배신자……"
켄스케여……
너에게 봄이 찾아오는 것은 정녕 언제가 되겠느뇨?
四十八
참고로 나머지 멤버의 진로상담의 모습을 정리해 보자.
아이다 켄스케의 경우:
"아이다 군…… 당신은 성적은 그런대로 괜찮군요……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따라서는……"
"선생님!"
"뭔가요?"
"그 성적으로 전자에는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전자?"
"전략 자위대입니닷!"
"………"
"어떻겠습니까!?"
"……그 이전에…… 중졸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되는군요."
추우욱…….
스즈하라 토우지의 경우:
"스즈하라 군…… 성적이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만…… 조금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하아…… 죄송함다."
"어딘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는 있나요?"
"아뇨, 선상님…… 저, 진학할지 어떨지 고민허고 있습니더."
"네? 취직인가요?"
"딱히 허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아니지먼…… 공부를 좋아허지도 않고 말이어요."
"뭐,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고등학교에 진학해 두면 나중에 가서 좋을 겁니다."
"그렇슴까. 기럼…… 이 고장의 공립 고등학교라는 걸로 혀 주시겄습니꺼? 너무 돈이 드는 데는 못 가니께 말입니더."
"알겠습니다. 단,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으윽……"
호라키 히카리의 경우:
"호라키 양, 당신이라면 신 토쿄 대학 부속이라도 노릴 수 있겠군요."
"이 고장의 공립 고등학교에 가겠습니다."
"음, 그렇습니까? 조금 더 높은 곳을 노려 봐도……"
"아뇨, 그곳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뭐어,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일 테니, 괜찮습니다."
"……저기, 선생님……"
"네?"
"그…… 스…… 스, 스즈하라 군은, 진로……"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만…… 이 고장의 공립 고등학교에 간다고 했었습니다."
"! ……그, 그런가요! (휴우)"
"………"
"………"
"…………호라키 양."
"네, 네? 무슨 일이시죠?"
"스즈하라 군, 그곳에 가려면 조금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엣…… 그런가요……"
"그래서…… 호라키 양, 그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에! 하, 하, 하, 하지만……"
"그는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랍니다……. 하지 않을 뿐이지요. 호라키 양이 가르쳐 준다면 분명히 성적도 향상될 겁니다."
"………"
"그렇게 하면, 반드시…… 같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겠지요."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 볼게요……"
담임교사의 경우:
호라키 히카리가 교실을 나간 다음…… 창문으로부터 비춰 들어오는 햇빛 속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젊다는 것은…… 좋군요……"
# by | 2007/05/12 21:54 | 번역 : 소설 (2nd RING)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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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서는 아스카도 변해야 할 텐데~ 과연 과연~
과연 언제 오는지, 그리고 와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되는군요. ^^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제 슬슬 이야기가 진행되어 간다는 느낌이랄까요.
앞으로도 보다 나은 번역으로 소설을 즐기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퍼간순대로 읽고는있는데 가장큰걱정은 3각관계는 어떻게 될것인가압니다~~
전에는 아스카의 거의 일방적인 독주였는데 말이죠. 이제 파워업한레이가 어떻게 행동할지가 관전 포인트!
(퍽! 뚜둑! 털썩.... 질질질...)
본능이 소란피워서 죄송합니다.;
그 뒤로도 계속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