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6일
2nd RING : 제065화 「선」
二百九十九
시계 바늘이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레이와 아스카는 몇 분 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지금…… 이 카츠라기 댁에는 신지밖에 없다.
미사토는 일이 늦게까지 안 끝나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미사토가 없다 보니 왠지 모르게 아스카도 레이도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머물러 있었으나…… 아스카는 이 시간이 되면 급격히 졸음이 쏟아져 와 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아스카는 반쯤 장난으로 「미사토도 없는데 퍼스트는 더 남아 있지 그래」라고 했지만, 빨개진 신지가 레이도 억지로 집으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신지는 욕실로 들어가 가볍게 샤워를 하고,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소파에 앉아서 볼륨을 낮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미사토로부터 연락이 없는 것은 조금 이상했다.
생활 리듬은 불규칙하기 짝이 없는 여성이지만,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늦는지 어떤지」 정도 연락은 빠짐없이 같이 사는 소년에게 알렸었다.
특히나 그 소년이 저녁 식사를 완전히 도맡아서 준비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 전에 연락을 해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무도 없더라도 전화 자동 응답으로 언제쯤 귀가할 예정인지를 녹음해 두는 것이 평소의 모습이다.
아무런 연락도 없었기 때문에 신지는 반대로 「미사토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서 올 예정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그녀가 먹을 식사도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결국 그 요리는 랩에 싸여서 냉장고 안에 들어가 있다.
텔레비전 화면은 탤런트가 서로를 패는 수수께끼의 연예 방송이 내보내고 있다.
"바쁜 걸까…… 미사토 씨."
신지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기다리고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
언제 돌아오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딱히 꼭 기다리고 있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신지는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찰칵 하고 현관에서 잠금 장치가 풀리는 소리.
신지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자 마침 미사토가 집에 들어오는 중이었다.
"아아, 미사토 씨…… 다녀오셨어요."
신지는 안심했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미사토는 허리를 숙여 신발을 벗으면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다녀왔어."
"늦었네요. 연락, 해 주시지 그랬어요."
"어……?"
미사토는 고개를 들어 신지를 본다.
그리고 신지와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조금 피하면서 초점을 허공에 맴돌게 했다.
"아아…… 그렇구나…… 안 했던가? 미안미안."
"……저녁, 드시겠어요? 다시 데우면 금방 준비할 수 있는데."
"응…… 아니, 먹고 왔어."
말하면서 미사토는 거실에 올라서더니 그대로 신지 옆을 지나쳐 갔다.
신지는 멈추어 선 채 미사토의 등을 눈으로 쫓는다.
"아…… 그런가요."
"응……"
그대로 자기 방의 문에 손을 댄다.
"……나, 바로 잘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신짱."
"아뇨…… 그 일은 괜찮은데요."
"내일은 늦게 출근할 테니까…… 안 깨워도 괜찮아."
스륵.
탁.
미사토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닫힌 미닫이문을 바라보며 신지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쩐지, 상태가 이상하다.
왜 그러는 걸까……?
닫힌 방문 너머…….
미사토는 어두운 방 안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입고 있던 옷을 재빠르게 벗어서 방 구석에 뭉쳐 놓듯이 던지더니 속옷 차림으로 침대 위에 쓰러졌다.
엎드린 자세로 아무렇게나 드러눕는다.
어둠 속에서.
베개를 움켜잡고.
마음은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허감에 휩싸여 있다.
잠은, 오지 않는다.
三百
다음 날 신지들이 집에서 나올 때, 결국 미사토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에 늦게 돌아온 그 다음 날은 아침 식사 때에도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기 때문에 그것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위화감이 있었던 것은……
들릴 리가 없으리라는 것은 알면서도 일단은 늘 그렇게 하듯이 방문 너머로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것을 알리자, 안에서 대답이 있었다는 점이다.
"……응…… 미안, 졸리니까 나중에 먹을게. 랩으로 싸 놔 줄래?"
졸려서 그렇다면…… 평소의 미사토라면 양해를 구할 것도 없이 잠의 바닷속 깊숙한 심해까지 빠져 있었을 것이다.
졸리지만 깨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심한 위화감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꽤나 실례가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겠으나).
어쩐지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 있었지만, 신지는 레이와 아스카와 함께 학교로 향했다.
"뭐 그리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신지."
신지의 책상 옆에 서서 아스카가 신지를 내려다본다.
신지는 턱을 괴고 있던 얼굴을 들어 아스카를 보았다.
"어?"
"멍―한 얼굴로 말이야."
"아아…… 아니야, 그냥."
신지는 머리를 긁적인다.
어젯밤, 그리고 오늘 아침의 미사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카리 군은, 이상한 얼굴이 아니야."
레이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구……"
아스카가 한숨을 쉬면서 대답한다.
아스카는 신지의 책상 앞에 있는 빈 의자에 걸터앉았다.
"어차피 미사토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거지?"
아스카의 말에 신지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어떻게……"
"그야, 오늘 아침에 이상했잖아. 깨어나 있는데 아침밥을 안 먹겠다니 말이야."
그 정도는 알 수 있다구, 라면서 아스카는 말을 이었다.
듣고 보니 그것은 그렇다.
"……응…… 뭐어…… 식욕이 없었던 것뿐인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신지가 애매하게 대답한다.
신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어젯밤 일도 위화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녀가 두르고 있었던 분위기 같은 것이 평소의 미사토와는 달랐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 수 있게 아스카와 레이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도 막연해서 어려웠고, 그것을 말해야 할지 어떨지도 망설이고 있었다.
딱히 어떻다고 할 것도 없다.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았던 것뿐일지도…….
"……병, 일지도 몰라."
레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신지와 아스카가 레이를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데?"
"……식욕이 없는 것은…… 몸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야."
아스카의 물음에 레이가 대답한다.
세 사람은 침묵해 버렸다.
세 사람에게 있어서 미사토라는 여성은 특별한 존재이다.
물론 이 세 사람 사이에 있는 것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그녀와 자신들 사이에는 유대가 있다고 느껴진다.
가족, 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특히 이 세 사람은 현실적인 가족의 애정과는 동떨어진 삶을 강요받아 왔다.
미사토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서로 남남이라는 입장만으로는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뭐…… 그치만 병이라면 어쩔 수가 없는걸."
아스카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가끔은 쉬고 그러지 말이야."
"그럴 수만도 없을 거야. 작전 본부장이니."
"아∼아, 조직의 톱니바퀴라는 느낌이네. 싫다아."
물론 NERV 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라는 점에 관해서는 신지도, 레이도, 아스카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의사를 존중받지 못하는 부품으로서의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 있어서의 무게감은 아이들쪽이 더 높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그들 자신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일이지만, 말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자는 이 자리에 없다.
"학교가 끝나면…… 훈련이야. 미사토 씨의 상태가 어떤지도 알 수 있을 거야."
신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三百一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서 잠시 동안, 미사토는 침대에 누운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잠은 깨어 있다.
한숨도 자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다.
자신의 감정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인식하고 당혹해 하고 있었다.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인다.
그 안에서 특히나 두드러지게 눈에 띄고 있는 마음.
그것은 분함과, 안도와, 애정과, 증오.
어젯밤…… 어째서 그 때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카지는 자신을 좋아해 주고 있었다.
명확하게 말로써 표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는 자만해도 좋다.
그 때…… 식당에서의 자신의 마음은, 마치 밀랍 세공처럼 인위적인 가벼움을 느끼게 했다.
어째서 카지가 내밀었던 손을 잡지 않았던 것일까?
자신에게 있어 그 상황에서 그를 거부할 이유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 그 이유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기묘한 안도감이 있었다.
카지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유혹임과 동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둠의 입구에 발을 들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학창 시절…… 카지와 헤어졌던 것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자신에 대해서 애정을 느끼지 않게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남자를.
언젠가…… 그에 대해서 애정을 느끼지 않게 되어 버릴지도 모르는, 자신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헤어졌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책이며, 회피라고도 할 수 있다.
몇 년을 지나서…… 지금, 같은 감정을 마음에 품는다.
카지의 품에 안기고 싶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또다시 카지의 마음에 닿음으로써, 그에게 버려질 공포도 동시에 손에 넣는다.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성장 따위는 겉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 무렵의 약한 자신이 아직도 가슴 속에서 울고 있는 것이다.
카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감정과 정면으로 마주해 오지는 않았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던 길에서의 그 날 밤…… 카지의 따스함을 입술에 느꼈을 때 분명히 생각했다.
자신은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깊게.
지금도 변한없이.
그렇기 때문에 증오하는 것이다.
어째서 지금이 되어서…… 이와 같은 괴로움을 맛보게 되는 것일까.
미사토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어두운 방 안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베갯머리에 놓여 있던 시계를 집어들어 오른쪽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누른다.
디지털로 표기된 시간 뒤로 오렌지색의 불빛이 유아등처럼 켜진다.
"벌써…… 점심, 이구나."
오늘은 오후 2시 출근이었다.
미사토는 무거운 허리를 이불로부터 떼어내듯이 일어난다.
NERV 에 가면 카지가 있다.
만나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 자신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三百二
카지는 확실히 NERV 에 있었다.
정확하게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일이 밀려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자신의 집무실에서 자 버리는 일이 가끔 있다.
독신 귀족의 검소한 자유, 라고나 할 수 있을까.
표면상으로 카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에 힘쓰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그것은 적당히 뺀들뺀들…… 듣기 좋은 표현을 한다면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모습이다.
완전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젯밤에 있었던 일 따위는 그의 뇌리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바인더에 아무렇게나 끼워 넣은 서류를 손에 든 채,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물고 다소 꾸깃해진 양복 차림으로 복도를 걷고 있다.
모퉁이를 돌았을 즈음에 카지는 오…… 하고 눈을 크게 뜨고 미소지었다.
"앗! 카지 씨!"
아스카가 카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옆에 있던 신지와 레이도 덩달아 카지 쪽을 돌아보았다.
"여, 세 분이서. 훈련이니?"
카지가 말을 건네면서 세 사람 앞까지 다가왔다.
"그∼래요∼ ……뭐어, 시작하기 전이지만."
아스카가 대답한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아직 30분 정도 남았어요."
신지가 휴대폰의 액정을 보면서 말한다.
"그럼 주스 정도는 사 줄까."
"앗싸아."
아스카가 웃었다.
탄산음료의 뚜껑을 돌리는 손가락. 플라스틱 뚜껑이 파깍 하는 작은 소리를 낸다.
그대로 작은 페트병을 기울여 마시는 아스카 옆에서 신지는 오렌지 주스 캔을 딴다.
신지 곁에 가까이 붙어서 서 있는 레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무설탕 홍차 캔이다.
휴게소(일전에 카지가 리츠코와 미사토와 만났던 휴게소와는 다른 곳이다)에서 네 사람은 작은 원형 테이블을 빙 둘러싸고 파이프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작은 공간에 마찬가지로 원형 테이블을 둘러싼 의자가 이밖에도 두 개 더 설치되어 있다.
벽에는 자판기와 잡지 진열대.
관엽식물도 늘어서 있지만 이것은 조형물이다.
카지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휴게소는 흡연실을 겸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구역이 금연인 NERV 안에서는 애연가의 오아시스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카지의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부드럽게 유기적인 흐름을 만들어 낸다.
그 연기는 천장에 설치된 환풍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카지 씨, 담배 끊지 그래요."
단숨에 페트병의 반 이상을 들이키고 나서 아스카가 말한다.
카지는 한쪽 눈썹을 과장되게 추켜올리며 미소지어 보였다.
"어째서?"
"그야, 몸에 나쁘잖아요. 카지 씨는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데."
"별 차이는 없어."
"프로라는 게 그런 거 아니에요오?"
"아니."
카지가 어깨를 움츠려 보인다.
"이런 건 겉모습부터 시작하는 거라구."
가볍게 대각선을 보면서 미소지었다.
"하드보일드하다고 하면 담배잖아?"
"바보 같아."
아스카가 어이없어 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카지 씨."
손에 든 오렌지 주스 캔을 보고 있던 신지가 얼굴을 조금 들고 카지 쪽을 보았다.
"응? 왜 그러니, 신지 군."
카지가 재떨이에 담뱃재를 떨구면서 말한다.
"……어제, 미사토 씨 상태가 이상하지 않았었나요?"
아스카와 레이가 신지를 보았다.
그리고 카지의 얼굴로 시선을 옮긴다.
카지는 태연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면서 신지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니? 카츠라기한테."
"아뇨…… 무슨 일, 이냐고 하면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요……"
신지는 말끝을 흐렸다.
"어쩐지, 기운이 없다고 할까……"
카지는 가벼운 인상을 유지한 채로 말없이 신지의 말을 듣고 있다.
"……어쩐지 이상했었지."
아스카가 확인을 하듯이 신지에게 말을 건넨다.
레이도 아무 말도 하지는 않지만 신지의 얼굴을 보고 있다.
"아니, 나는 모르겠는데에."
카지가 어깨를 움츠리고 말한다.
"……그런가요."
신지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슬슬 시간이 된 거 아니야?"
태연한 모습으로 카지가 말했다.
카지 뒤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니 이미 훈련 개시 시각 10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아…… 정말이다."
아스카가 허둥거리면서 일어났다.
신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세 사람의 페트병과 빈 캔을 집어들었다.
아스카와 레이는 휴게소 출구로 향한다.
신지는 쓰레기를 들고 휴게소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카지도 자신이 마신 빈 커피 캔을 손에 들고 신지 뒤를 따랐다.
텅그렁. 텅그렁.
쓰레기통의 동그란 구멍에 캔을 밀어넣자 안에서 금속끼리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신지는 곁눈질로 카지를 보았다.
"사실은…… 두 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거든요."
카지는 신지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호오?"
"죄송해요…… 저기, 단순히 제 생각일 뿐이지만요."
신지가 겸연쩍다는 듯이 미소짓는다.
그러나 카지는 가볍게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아니…… 정답이야."
"네?"
"뭐…… 카츠라기가 기운이 없는 건,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는걸."
신지는 카지를 본다.
카지는 미소를 지은 채 시선을 쓰레기통으로 옮겼다.
커피 캔을 밀어넣는다.
도중까지는 저항이 있지만, 반쯤 밀어넣자 빨려들어가듯이 구멍 속으로 사라져 간다.
이것은 이상한 불쾌함과…… 상쾌함을 동시에 지닌다.
신지는 작게 중얼거렸다.
"딱히…… 자세히 물을 생각은, 없지만요."
"그래."
"……하지만, 싸우신 거라면 화해해 주세요."
싸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군.
카지는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한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카지 씨와 미사토 씨는, 사이좋게 지내 줬으면 좋겠어요."
"………"
"죄송해요…… 그래봤자 결국 남의 말이지만요……"
"……아니."
카지는 신지를 보고 가볍게 미소지었다.
"노력할게."
"……야, 신지! 뭐하고 있는 거얏."
휴게소 출구에서 아스카가 언성을 높였다.
카지가 어깨를 움츠린다.
"노하셨는걸."
"아, 네…… 죄송해요, 저기…… 그럼."
신지는 허둥거리면서 카지에게 가볍게 머리를 숙이더니 레이와 아스카에게로 달려갔다.
레이가 신지의 팔을 꼬옥 끌어안는다.
아스카가 신지를 팔꿈치로 찌르면서 괴롭히고 있다.
카지는 그런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윽고…… 세 사람의 모습은 출구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카지는 그 즉시 휴게소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두 개피째 담배에 불을 붙인다.
원래 장소까지 돌아오더니, 의자를 끌어서 그대로 아무렇게나 털썩 걸터앉았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쉰다.
입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는 힘없이 테이블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져서 녹아 버린다.
카지는 등받이에 뒤통수를 기대듯이 깊숙이 앉아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三百三
미사토는 NERV 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자신의 집무실에 틀어박혔다.
오늘의 주된 업무는 각종 신청서·보고서 작성이며 그 모든 것이 사무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소 같았으면 리츠코의 집무실에 멋대로 찾아가거나, 식당과 휴게소, 훈련 제어실 구석 등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다지 혼자서 일에 몰두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어디선가 카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었다.
……실제로는……
지금부터 칠드런의 훈련이 있기 때문에 시종일관 집무실에 틀어박혀 있다는 것에는 문제가 없지만도 않다.
그러나 칠드런의 훈련에 관해서는 리츠코와는 달리 명확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되는 것」이 규율로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훈련 시간에 미사토가 하는 일이라고는 보고 있기만 할 뿐이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사토는 오늘 이곳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쌓여 있는 서류를 처리해 나간다.
지난 며칠 동안 급하게 들어온 몇 가지 일에 쫓겼었기 때문에 서류 작업이 밀려 있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리해야만 하는 서류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의 미사토에게는 서류의 양이 신경쓰이지 않았다.
일이 많은 편이 다른 일을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오늘 카지와 만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일도 똑같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은 도망치고 있다, 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감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연스러운 친구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버·더·레인보우에서 몇 년만에 만났던 그 떄처럼.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눈앞을 흐르는 서류의 글자들은 눈에 들어오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비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처리해 가기만 한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것만으로도 끝나는, 그런 별 것도 아닌 작업인 것이다.
누가 도장을 찍더라도 다르지 않다.
그렇더라도 서류 다발은 필요하며, 그에 적합한 지위에 있는 인간이 인가했다는 증거로서 빨간 표시를 빠뜨릴 수는 없다.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확실하다.
그것이 현실.
뇌리에 카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은 결국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일까?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삐삣……
갑작스럽게 들려온 전자음에 미사토는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한 순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으나…… 몇 초의 시간을 두고 자신의 방에 울리는 인터폰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평소에 변변히 집무실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곧바로 반응할 만큼 기억에 바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사토는 허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있지만 그것은 완전히 잊고 있다…… 그렇다기보다는 서류에 파묻혀서 결국 사용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누구일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미사토는 문 옆에 있는 금속판에 손가락을 대고 자동문의 잠금 장치를 해제했다.
"여어."
카지가 한쪽 팔을 들었다.
미사토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카지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카지는 문앞에서 바지 호주머니에 한손을 질러 넣은 채 미소지으며 서 있었다.
미사토는 눈앞의 인물이 「카지라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연결시키는 시냅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카지는 미사토의 얼굴을 보고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문전박대 하는 거냐?"
"……어……?"
"거기…… 비켜 주지 않으면 못 들어간다구."
"아…… 아, 으, 응……"
당황해서 시키는대로 몸을 비키는 미사토.
카지는 태연한 얼굴로 미사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등뒤에서 문이 닫히는 공기음이 들렸다.
三百四
"엄청난 양인걸."
카지가 쌓여 있는 서류 다발을 보고 즐겁다는 듯이 말하는 그 뒷모습을 미사토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미약한 전파가 달리듯이 순간적으로 퍼뜩 눈을 깜빡이더니 영상과 사고가 서로 일치했다.
"앗…… 캇…… 캇캇."
"카?"
"카…… 카지 군!?"
"이제와서 무슨 말이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카지가 미사토를 돌아본다.
미사토는 당황해서 카지가 있는 책상쪽으로 급히 돌아왔다.
"앗, 어…… 뭐, 뭐하러 온 거야?"
"뭘 하러 온 건 아니지만…… 얼굴을 보러, 말이지."
"얼굴이라니……"
"신지 군이 걱정하더라."
"어?"
"카츠라기가 기운이 없다고 해서 말이야."
"아……"
카지가 태연한 표정으로 미사토를 본다.
미사토도 무심코 카지를 보았다.
"……역시, 어제 일 때문이야? 원인은."
"어제 일……이라니……"
"아니야?"
"어…… 아…… 아니……"
미사토는 당혹스럽다는 듯이 시선을 좌우로 움직였다.
너무나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더군다나 갑자기 어제 일을 꺼낼 줄은 생각치도 못했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할 재료가 너무나 부족해서 선택할 수가 없다.
"……카츠라기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
"난…… 지금도, 너와 예전처럼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미사토는 카지를 보았다.
카지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구나, 라고…… 그런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어…… 어?"
카지가 한 말의 의미는 대단히 알기 쉽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제 미사토는 결별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것을 듣고 나서 하는 말로써는…… 너무나도 가볍지 않은가.
"왜 그래?"
카지는 미사토에게 미소지어 보이더니 책상 구석에 가볍게 기대듯이 서서 다리를 꼰다.
"말하는 의미는, 알겠지?"
"아…… 어,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하, 하지만 난, 어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어."
"그건 카츠라기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잖아."
"………"
"난, 내가 생각하는 걸 말했을 뿐이야. 카츠라기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둘째치고, 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진심……으로?"
"진심이지. 이상하냐?"
"……이상해."
카지는 어깨를 움츠려 보였다.
"어째서?"
"어째서냐니…… 그야. 저기, 그야, 카지 군은…… 게다가, 왜 이제와서……"
"시간 같은 건 별로 관계가 없잖아?"
"이…… 있지 왜 없어! 헤어지고 나서…… 몇 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지금, 예전처럼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데!"
미사토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의 내용에 촉발되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다……
왜 이제와서?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기다렸다, ……라는 건, 안 되겠어?"
"기다렸다니…… 뭘, 말이야?"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타이밍을 말이야."
"못 돌아가."
미사토는 감정을 억누르듯이 중얼거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좀 더…… 빨랐다면 몰랐어.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안 돼. 그야말로…… 타이밍을 기다렸던 거라면, 실패……라구."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이지."
"왜…… 어째서야! 모르겠어!?"
"좀 더 빨랐다면, 이라고 했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생각하냐……니."
"우리는…… 이제서야 겨우, 어른이 된 거야."
"……얼버무리려는 거야?'
"어른이 된 줄 알고 있었어도, 비교적 최근까지 아이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거지. 그런 때에 다시 시작해 봐야 똑같이 반복할 뿐이야."
"어떻게…… 아이였다고, 말할 수 있지? 어째서 지금은, 어른인 거야…… 아이면 안 되고, 어른이라면 괜찮다니, 뭐가!"
"………"
"그런 건 입에 발린 말일 뿐이야! 듣기에 좋은 말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라구."
"아이들 덕분이야."
"……하?"
"그 아이들이 와서…… 우리는, 아이를 졸업한 거야."
카지는 가만히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른이 된 줄 알고…… 어른을 연기했었어.
그것을 깨달은 거지."
……그들이,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야.
그들이, 어른이기 때문이지."
"………"
"우리는…… 겨우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게 된 거라구."
미사토는 카지의 말에 촉발되듯이…… 그 뇌리에 세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야나미 레이.
소오류·아스카·랑그레이.
이카리 신지.
"그 아이들이…… 어른?"
중얼거리듯이…… 입안에서 되새겨 음미한다.
그렇다…….
"헤어지고 나서, 꽤나 지났지."
카지가 공기처럼 희박한 말투로 중얼거린다.
"사회에 진출해서…… 그야말로 NERV 라니,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그런 직업을 골랐지."
"………"
"대학 동기 녀석들 중에, 회사 돈으로 2년이나 군사 훈련을 받게 하는 그런 곳에 취직한 녀석이 있냐? 매달 월급 이외에 위험수당을 받는 녀석도 거의 없을 거야."
"……무슨 얘기지?"
"그런대로 세상의 파도에 휩쓸려 고생해 왔다는 거지."
카지는 어깨를 움츠리고 웃어 보인다.
"허나……"
카지는 체중을 실었던 책상에서 몸을 떼더니, 특별히 어떻게 하는 것도 아니면서 방안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우리는 결국,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어."
미사토는 가만히 카지를 응시했다.
카지는 멈추어 서더니 시선만을 미사토에게 향하고 미소지었다.
"어른이 된 줄로만,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알고 있잖아?"
"………"
"카츠라기가……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예전과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니야.
결국,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거 아니야?"
"그렇지는……"
미사토는 부정하려고 했다가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정말로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을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학창시절과 무엇이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지?
남들만큼 나이를 먹고, 그런대로 세상살이를 몸에 익히고.
적당한 TPO 에 맞춰서 자신을 꾸미는 것을 익히고.
총을, 쏠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어떻다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지난 몇 달 동안에 조금은 변했을 거야."
카지의 말에 미사토는 현실로 다시 끌려 돌아왔다.
앵무새처럼 카지의 말을 되뇐다.
"변했다……?"
"그래."
눈을 감고…… 카지는 웃는다.
"……정말이지 대단하다구.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그래…… 함께 지내면서 알게 됐잖아?"
"뭐가……"
"……멋지게 성장해 가지. 기분 좋을 정도로 말이야."
"………"
"우리가 그런 식으로 성장했던 적은 과연 있었을까. 난 그다지 기억에 없어.
물론 나이를 먹으면 성장을 계속해 가지. 하지만 그 아이들의 성장은, 의미가 달라.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고, 필사적으로…… 걷고 있어."
그것은 미사토도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다…… 감동을…… 느낄 정도로.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움켜쥐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 중학생이고…… 여러 가지 의미로 불안정하고 미덥지 않다. 그런 의미로 말한다면 아직 어른이라고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지가 하고 싶어하는 말은 이해한다.
그들은…… 자신들보다도 훨씬 먼 곳을.
훨씬 앞을 보고, 대지에 발을 힘껏 내딛고 걷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힘으로.
"……카츠라기."
"……어?"
"……자신이…… 변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거야?"
"……어…… 어?"
"분명히…… 오버·더·레인보우에서 카츠라기를 다시 만났을 때는…… 아아, 안 변했구나, 라고 생각했어."
"………"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카츠라기는 예전과는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지."
"변하게 한 것은 분명히, 그 아이들이야……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학생 같은 기분이 들어.
오랫동안 우리는 제자리걸음을 했었지만……
점점 더 걸어 나가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그…… 나도 그렇게, 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는걸."
그런 말을 들어도……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는 솔직히 스스로 느낄 만한 것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들에게 이끌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 세 사람은 착실하게 서 있다.
그리고…… 동시에 비틀거리면 서로 지탱해 주고 있다.
그것은 타산이 아니라.
지탱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렇게 하게 만드는 것이며.
그것은 마냥 의지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기에 착실하게 걸어 나간다.
인간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카지와 헤어지고…… 자신은 계속 혼자 서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응석을 부리는 것도…… 응석을 받는 것도, 그것을 잃는 공포가 늘 따라다닌다. 그렇게 생각하고 혼자 서는 것을 택했다.
막무가내로…… 그저 완결된 자기를 바랐었다.
아스카에게 가족의 숭고함에 대해 설득했던 적이 있다.
무슨 생각을, 했었던 것일까?
그들에게 자신을 의지해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이 의지한다는 것을 생각했던 적이 없었다.
분명히, 그들에게 그 이상의 부담을 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그들을 위해서 들었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일방적인 마음을 바랐던 모습이었다.
서로를 지탱하는 것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를 지탱하면서도 강하기 때문이다.
예전의 자신이 약했던 것은……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상대를…… 믿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래서 두려웠던 것이다.
버림받는 것이.
버리는 것이.
그것은 상대를 믿었더라면 생겨나지 않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두려워."
미사토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카지는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두려워? 뭐가?"
"너에게…… 버림받는 게."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알고 있어…… 알고 있지만…… 이성과는, 다른 감정인걸."
방금 전까지 일었던 감정의 파도가 거짓말인 것처럼……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넌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
"안 한다고 했잖아?"
"………"
"너와 함께 있었던 2년 동안은…… 나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2년이었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금도 추억이 빛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거지.
지금도, 카츠라기를 사랑해.
거짓말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카츠라기를 지탱하고 싶고, 지탱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카지의 말에……
미사토는 젖은 눈으로 미소지었다.
"거짓말…… 사실은…… 지탱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하고 있지?"
"아니? 그렇지는 않다구."
"하지만…… 괜찮아."
"카지 군…… 넌, 우리가 어른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직…… 아직 한참 아이야.
신짱들에게 비하면 말이지.
하지만…… 그래도 좋아.
카지 군……
둘이서……
……걸어가면 되는 거야."
카지가 미소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미사토가 그 손을 잡는다.
이번에는 힘껏…….
카지에게 이끌리듯이 그 품에 뛰어들어 아주 조금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걱정했던 공포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밥공기를 떨어뜨린 적이 있었다.
딱딱한 바닥에 떨어져서 두쪽으로 쪼개져 버렸다.
안에 든 밥도 바닥에 흩어졌지만, 자신에게는 쪼개진 밥공기쪽이 슬펐다.
아무 특징도 없는 밥공기였지만 마음에 들었었다.
주워 모아서 식사는 제쳐 놓고 밥공기를 고치려고 했다.
부모에게 혼나서 어떻게든 다시 식사를 시작했지만, 밥공기가 신경쓰여서 안절부절못했다.
새로운 것을 살 테니까 내버려 두라는 말을 들었지만, 결국 접착제를 가지고 원래대로 고쳤다.
딱 들어맞았을 때의 기쁨.
잘 생각하지 않고 고른 접착제 때문에 식사할 때는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동그란 표면에 한 가닥, 깨끗한 선이 남았다.
……그것은, 쪼개지기 전보다도 더 마음에 들게 되었다.
# by | 2009/09/26 21:11 | 번역 : 소설 (2nd RING) | 트랙백 | 덧글(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