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6일
Genesis Q : 제25화 결전 제 3 신토쿄시 - Part.H
무덤의 어둑한 어둠 속에서 카이 요시하루는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흔들의자의 한 부품이기라도 하듯이 조용히 그곳에 계속 존재하고만 있다. 그 옆에는 명상하듯이 눈을 감은 호바 이브의 모습이 있다. 날씬한 큰 키, 팔짱을 낀 두 팔, 그 모습은 혼이 깃들지 않은 석상을 연상시켰다. 니콜라스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이브가 소리없이 눈을 뜬다. 무엇인가를 확인하듯이 높게 어둠속에 스며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니콜라스, 이리 오렴."
니콜라스는 잘 훈련받은 군견처럼 그 명령을 따랐다. 이브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 깨닫는다. 어머님께서는 갈증이 나 계신다. 주저없이 야전복의 옷깃을 풀어 소녀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하얗고 화사한 목을 드러낸다. 이브는 니콜라스의 등 뒤로 천천히 돌아가더니 입술로 핥듯이 가까이 입술을 가져가면서 조용히 니콜라스에게 속삭인다.
"노엘들은 전멸한 모양이구나."
니콜라스의 상기된 머리에서 단숨에 핏기가 가셨다.
"요시하루, 네가 예상한 대로야. 루시퍼의 「성배」가 발현됐어."
사라질 것처럼 희미하게 "그런가" 라는 말이 들렸다.
"나는 말이지, 니콜라스.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끌어당기고자 싸우는 아이를 좋아해. 너희가 나보다 앞서겠다고 한 것은, 그것은 그것대로 큰 성장이라고도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아니, 너희는 내기에서 진 거야. 알겠니."
니콜라스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혼란의 폭풍 속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다.
"진 거야. 그러니까, 이것으로 끝이란다."
이브의 입술이 니콜라스의 목에 닿았다.
"그만두도록 해, 호바."
힘없이 제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토록 바라고 애태웠던 이브 어머님의 입맞춤인데도…… 그 이상의 시간은 없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
"수고했어, 니콜라스. 편히 쉬도록 하렴."
자애가 담긴 말투로 이브는 니콜라스를 놓았다. 흥미가 없어진 인형을 내버리듯이. 니콜라스는 아무런 저항도 보이지 않고 바닥에 쓰러져서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늘어진 입가에서 침이 조금 흘러나오고, 그 눈은 어두워 한 가닥의 빛도 깃들어 있지 않다.
"먹었군, 또다시."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뚜렷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카이에게 눈길을 주며 이브는 미소짓는다.
"어째서지, 니콜라스는 네가 마음에 들어했을 텐데."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먹은 거지."
"내 앞에서는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잖나."
"내가 지킬 거라고 생각했어?"
오히려 우습다는 듯이 이브는 묻는다. 돌아보지도 일어나지도 못하는 카이에게.
"「신을 먹는 자」를 나에게 심은 것은 당신이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카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지친 듯이 무거운 침묵만을 뱉어낸다.
"내 식사를 그만두게 하고 싶다면 어서 내 시간을 멈추도록 해. 내가 먹보인 건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게다가 가끔은 오리지널도 맛보고 싶은걸. 틀림없이 농후하고 자극적이겠지."
이브는 애교마저 담고 미소짓는다. 자신을 연모하며 쓰러진 소년들에 대한 일은 기억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듯이. 오늘 밤 저녁 식사 메뉴에 대해서 생각하기라도 하듯이. 보름달이 뜬 밤에 마녀가 노래를 부르듯이.
●
"잘 와 줬어, 신지 군."
나기사 카오루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우애를 말에 담아 신지를 맞이했다.
"겨우 여기까지 왔어, 카오루 군."
이카리 신지는 긴장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싸움을 앞두고 고조되어 떨리는 것이라 믿고 싶다.
"미즈호는 되돌려 받았어."
노력해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레이와 아스카도 돌려 받아야겠어."
카오루는 미소짓고 있다. 절친한 친구의 모습에 과장 없이 빛나는 듯한 웃음을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실은 너를 위해서 그랬던 거야, 당장이라도 그렇게 말해 줄 것만 같은 그런 상냥함과 따스함을 지닌 가장 친한 친구의.
"잘했어, 신지군."
말과는 다르게 그 눈동자에 예전의 반짝임은 없었다.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 수가 있다.
슬퍼도 두 사람은 그런 사이였다.
"예상했던 것 이상이야, 신지군. 나는 기뻐, 정말로 기뻐."
카오루는 웃는다. 좌우 두 손에서 뻗은 「창」이 조금 더 깊이 파고든다.
"몸이 찢어져 버릴 것만 같은 고통, 마음이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탄식, 나는 알 수 있어. 네가 어떤 일을 겪고, 그것을 어떻게 해서 극복했는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너를 상찬하겠어. 나의 절친한 친구는 최고라고, 달을 향해서 밤새도록 소리쳐도 좋아."
백자 같은 하얀 볼에 붉은 기가 돈다. 흥분하고 있다. 짙은 붉은색의 눈동자를 크게 뜨고, 그리고 그곳에 광기의 그림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렇기에 그런 너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이 순간을 나는 최대의 기쁨으로 맞이할 수가 있지. 고마워 신지군, 나에게 능욕당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와 주어서."
상기된 볼을 일그러뜨리며 카오루는 환희에 흠뻑 취해 있었다.
한편으로 신지는 움직이지 못한다. 뜻밖의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토록 흥분한 카오루를 본 적은 없다. 아니, 카오루는 아니지만 이 말투, 이 광기 서린 태도는 기억이 난다. 따끔, 하고 가슴 한가운데가 아파져 온다.
그 크리스마스 날, 도화사와 같은 산타클로스, 카이 요시하루의 일그러진 웃음이 뇌리를 스쳤다.
"그 모습을 손에 넣기 위해서, 그 힘을 얻기 위해서 꽤나 심한 것을 보았겠지?"
변함없이 웃는 얼굴로 카오루가 다가온다.
열 걸음 떨어진 거리.
서로의 간격까지 앞으로 한 걸음 더.
"그렇게까지 해서 얻은 힘으로 이 나를 묵사발로 만들고 싶을 거야."
조용히 두 팔을 벌린다. 무방비하게, 어디까지나 상냥하게.
"자아, 어서 와. 단 한 방만, 나는 너에게 주겠어. 친구로서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야. 내가 주는 선물. 네가 분명히 바랐던 일일 거야."
귀 뒷부분이 열기를 띠는 것을 느꼈다. 분노가 체온을 끌어올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움켜쥔 오른팔이 희미하게 떨린다.
일찌기 느꼈던 적조차 없었던 마음이 몸을 태운다.
웃기지 마!
폭발에 몸을 맡기고픈 유혹이 살며시 다가섰을 때,
"신지, 안 돼!"
아스카의 목소리가 말 그대로 붙들어 말렸다.
그 목소리만으로 신지는 단숨에 냉정해질 수가 있었다. 그랬다. 그런 일을 위해서 손에 넣은 힘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위해서 뛰어넘은 고통은 아니었다.
마음속으로 듬직한 소꿉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신지는 카오루를 보았다. 똑바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분명히 말했어, 아스카와 레이를 데리고 돌아가겠다고. 내 바람은 그것뿐이야."
등 뒤에서 아스카가 숨을 삼키는 기척을 느꼈다. 흥분, 마구 뒤섞인 감정이 그녀의 눈물샘에서 흘러 떨어지는 소리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이런이런,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너는 정말로 어수룩하구나."
어깨를 움츠리는 카오루.
"그게 아니라면 한없는 바보인가."
쓴웃음이 입술에 번진다.
"지금밖에 없다구. 이 나를 때릴 수 있는 기회 같은 건."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이야기야. 너를 때림으로써 아스카와 레이를 구해 낼 수 있다면 그 때는 온힘을 다해 너를 때리겠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야."
있는 힘껏 침착한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했다. 오른팔은 당장이라도 폭발하기 직전이다.
"그런가, 과연. 늘 우유부단한 너로서는 논리적인걸. 이렇게 하면 감정에 몸을 맡기고 덤벼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난에 실패한 아이와 같은 얼굴로 웃는다.
"아스카는 되돌려 받았어. 레이는 어디에 있지?"
"글쎄, 레이라. 어디에 있는 걸까. 아마도 카이 씨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어딘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이다.
"그게 어디야?"
아주 조금 몸을 앞으로 구부리는 신지.
"가르쳐 줄 것 같아?"
도전적인 웃음.
"게다가, 아직 아스카짱을 돌려 준 기억은 없는걸."
그 짙은 붉은색의 눈동자가 빛났다.
카오루의 적의에 반응하여 신지 안의 에바가 순식간에 「벽」을 전개한다. 신지가 반응하기보다도 빠르게 「빛의 화살」이 「벽」에 격돌하여 번개와 같은 빛의 방류가 방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일, 그러나 신지는 카오루의 모습을 놓친다.
처음부터 눈속임을 할 속셈이었다고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속삭인다. 인식하기보다도 본능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잃어버린 것을 찾기도 전에 한 가지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아, 갈까."
카오루는 방의 안쪽 구석, 그곳에서 세 걸음 너머에 바람이 통하는 중천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었다. 그 손에 아스카를 겨드랑이에 낀 채. 그곳에 있었을 두꺼운 아크릴 유리는 이미 파괴되어 약간의 파편이 달라붙어 있을 뿐, 정전 때문에 에어컨은 멈추어 있겠지만 희미하게 바람은 불고 있었다.
"아직 아스카짱은 내 손안에 있지."
입술을 반달 모양으로 추켜올리고 카오루는 도전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반대로 아스카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표정만은 곤혹과 놀라움으로 굳어 있었다. 크게 뜬 눈이 떨면서 신지를 향한다.
"내 기억 조작을 스스로 깨뜨린 것은 놀랐지만 말이야. 내가 걸어 둔 장치는 그것만이 아니었다는 거지."
카오루는 그렇게 말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신지는 망설였다. 카오루가 꾀어 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냉정해져야만 한다고 필사적으로 생각한다. 한편으로 마음은 초조해진다. 아스카를 데리고 가 버린다, 그 한 가지만으로 그의 마음은 공포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만둬, 카오루."
무릎을 꿇은 상태로 아라시가 소리쳤다. 아직 일어날 만큼 힘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 아이는 두고 가."
"그럴 수는 없지. 나는 그러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밑바닥에서부터 말이야."
카오루는 들을 마음도 없다. 아라시가 기척만을 등 뒤로 보낸다. 그것을 알아차린 듯이 카오루가 입을 연다.
"안타깝지만 라이도 요우코도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거야. 신지 군의 「성배」 덕분에 에바의 활동률은 아슬아슬한 수치까지 돌아와 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게 고작일걸."
쓰러진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 두 명의 동료에 대해서 모질고 인정 없이 분석해 보인다.
"그래, 하도록 해. 타브리스. 루시퍼를 이곳으로."
어둠 속 깊은 어둠에서 안락의자 위에 있기만 한 남자가 희미하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희미하게 중얼거린다.
"그렇게 무섭니? 아스카를 빼앗기는 것이, 나에게 지는 것이, 또다시 절망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
신지는 그것을 도발이라고 판단할 만한 이성도 있었다. 그러나 핵심을 찔려서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더욱 더 냉정함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조금씩 이성이 마모되어 간다.
한 걸음 더 카오루가 물러섰다.
"마침 지금쯤, 일까. 태풍의 눈에 들어간 모양이야."
정전으로 불빛이 사라진 어둠 그 자체인 통로 안을 푸르스름한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그 때였다.
"멋진 밤이구나. 우리의 밤에 딱 맞아."
카오루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통로의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빛을 투과한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것과 보름달이었다는 것 때문에 그 달빛은 유난히 더 선명해 보였다.
"기다리고 있을게, 신지 군."
단 한 순간, 주의를 달빛으로 보냈다. 그 틈에 아스카를 겨드랑이에 낀 카오루의 모습이 창 너머, 달빛이 쏟아지는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다.
소리쳤다고 생각한다.
신지의 마음속에 있는 이성은 증발되어 울부짖으면서 아무런 주저도 없이 뛰어나갔다.
"아아, 정말로 유리처럼 섬세하구나. 너의 마음은."
뜻밖일 정도로 가까이에서 그 목소리가 들렸다.
낙하 속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이해한다. 카오루는 깃털처럼 천천히 허공을 춤추고 있었다. 중력에 잡아당겨지는 신지는 곧바로 카오루와 아스카를 앞지른다.
신지의 가느다란 왼팔이 위로 올려져 「빛의 실」이 벽의 한쪽 모퉁이에 휘감겨 급격히 낙하 속도를 죽인다. 반동으로 크게 휘둘리면서 신지는 오른손을 움켜쥐어 방대한 힘을 모아 간다.
"역시 호의를 가질 만해."
슬금슬금 떨어지는 카오루의 목소리는 달빛 속에서 신기하게 잘 들렸다.
기합이라는 그런 얌전한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지르는 소리와 함께 신지는 벽을 차고 카오루에게로 뛰어들었다.
온힘을 담은 혼신의 일격이 카오루의 왼뺨을, 아니 왼쪽 얼굴을 때려 부순다.
"좋아한다는 말이지."
그러나 붉은 팔각형의 빛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한정적으로 전개된, 마침 신지의 오른 주먹과 같은 크기의 「벽」이 그곳에 있었다. 간섭하여 중화시키기 위한 「벽」을 주먹에 싣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아니,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신지는 거기서 자신의 어리석음에 전율했다.
"하니까 할 수 있잖아."
속삭이는 듯한, 귓속말을 하는 듯한 조용한 목소리이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겨드랑이에 끼듯이 안겨 있는 아스카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것을. 그 손에는 어느새 예리한 나이프가 쥐어져 있는 것을. 그 칼끝이 칼자루까지 자신의 왼쪽 가슴에서 조금 위쪽에 꽂혀 있는 것을.
폭발한 것은 분노였다. 무엇보다도 아스카가 나이프로 사람을 찌르게 했다, 그 행위가 신지의 뇌수를 분노로 불살랐다.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대로는 나를 이기지는 못한다고."
카오루의 두 눈이 그 때까지 없었던 불길함으로 마치 독처럼 번뜩였다.
카오루의 온몸에서 일곱 가닥의 빛이 뻗어 와서 신지의 온몸을 꿰뚫었다. 이중나선의 빛, 아까 전에 EVA-R 인 소년들을 소금 덩어리로 바꾸었던, 분명히……
"이것이 나의 「롱기누스의(신을 죽이는) 창」이야."
미간, 양팔, 목, 가슴 한가운데, 배꼽, 하복부에 이중나선으로 된 창이 꽂힌다. 그것은 신지의 몸을 반대쪽 벽까지 되밀고, 결코 약하지는 않은 벽을 부수고 그 안에 있는 구조재를 부수며, 더군다나 그 너머에 있는 벽에 말 그대로 신지를 박아 버리고 나서 겨우 멈추었다.
"우선은 안심해도 괜찮아. 내 「창」은 상대를 소금으로 되돌리는 것뿐 아니라 또 한 가지 중요한 힘이 있어. 그쪽이 원래의 용도인데 말이야. 나는 몸안의 「에바」를 죽이는 것이 가능해."
듣고 싶지도 않은데 신지에게는 뚜렷하게 그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30미터는 떨어져 있었지만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너머에서 그것은 들렸다.
"내가 죽인 것은 네 몸안에 있는 쓸데없는 에바, 뿐이야."
어느새 몸을 꿰뚫었던 이중나선의 빛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곧바로 온몸을 덮쳐 오는, 현기증이 날 정도의 권태감. 얼음과 같은 한기, 온몸의 열과 힘이 어둠 속에 녹아 가는 것 같은 불안.
실제로 그 몸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고 있었다. 힘이 넘치는 오른팔이 오그라든다. 풍만한 가슴은 오그라들고, 둥근 허리는 약해지고, 힘있는 두 다리는 지탱하는 힘을 잃는다. 기다란 세 가지 색의 머리털이 원래의 길이와 색으로 돌아오고 키도 작아진다. 무엇보다도 온몸을 맴돌았었던 힘이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여기까지 자신을 이끌었던, 자신을 지탱하는 코어였던 힘이 사라져 없어져 버린다.
"나는 헤븐즈 도어 너머에 있는 묘지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겠어. 시간제한이 있어서 말이야. 신을 먹는 자의 제물이 되기 전에 부디 아스카짱 곁에 도달해 보여 줘."
멀어지는 기척. 무책임한 말이 신지에게 들린다.
"아까 말했던 것, 너는 믿지 않을지도 모르고 나도 잊고 있었지만, 역시 나는……"
조금씩 멀어져 간다.
몇 초 동안의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작별이야."
그것은 누구를 향한 말이었을까.
그 후로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먼지는 걷히지 않고 아직도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돌더미도 있었다. 그 중심에서 신지는 몸을 떨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지금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식했던 천사들의 에바가 멎어 있었다. 그토록 느꼈었던 힘의 파동을 전혀 느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둠과 먼지 속에서 팔을 살짝 움직여 몸을 만진다. 팔도, 가슴도, 머리털도, 다리도, 배도, 허리도, 울고 싶어질 만큼 가느다랗고 무력한 감촉을 되돌린다. 이것이 15년 동안 자신의 몸이었다는 것을 믿고 싶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도 컸다.
신지는 손에 넣었던 에바의 힘과 함께 그 모습도 잃고, 그 몸 하나로 어둠의 밑바닥에 남겨진 것이다.
아스카도 데리고 가 버렸다.
오열이 이를 악물어도 새어 나왔다.
한 번 무너지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무엇이 슬픈지조차, 무엇이 분한지조차 알 수 없어질 만큼 울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그리고 몇 분이 흘렀다.
식어 버린 온몸 중에서 유일하게 열기를 남기고 있는 곳이 있었다. 언제부터 그것이 있었는지. 아니, 훨씬 전부터 그것은 그곳에 있었다. 그 때까지는 온몸에 힘이 넘쳤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다.
살며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주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따스함이었다.
그랬다. 잊어버릴 뻔했다. 그녀는 뭐라고 말했는가.
「게다가 너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잖아. 카오루에게 도전하는 건 나를 구하는 것보다도 몇 배는 더 어려운 일이니까. 힘내야 돼」
두 뺨에 그어진 메이의 핏자국에 살며시 손을 가져갔다.
알고 있었던 일이다.
상냥하게 메이가 미소지어 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이야."
신지는 자기 자신을 향해 그렇게 타일렀다. 아직 자신이 남아 있다. 해야 할 일은 있다. 그저 쓰러져 울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그래, 아직 할 수 있어.
자신의 피와 힘과 마음을 맡긴 천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나이프로 찌른 아스카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뇌리에 떠올랐다.
괜찮다고 말해 줘야 돼. 이런 것쯤은 다친 것도 아니야, 나는 전혀 괜찮다, 라고. 다행히도 가슴의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그 사실이 신지에게 용기를 주었다. 아직 할 수 있다, 아직 갈 수 있어. 고생해서 돌더미로 된 침대에서 일어난다. 떨어지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내는 달그닥거리는 소리와 그 목소리는 뒤섞였다.
"이카리 군?"
어둠 너머, 부숴진 벽의 그림자에서 두 개의 붉은 눈동자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간신히 걷힌 먼지 너머에서 등 뒤로 비추는 달빛 속에 그녀는 있었다. 너무나도 하얀 피부, 파란 빛을 띤 회색의 머리, 생기를 느끼게 하지 않는 표정과 대조적으로 선명한, 선혈과 같은 눈동자.
참아 냈었던 눈물로 그 붉은 빛이 일그러졌다.
살짝 곤혹스러운 듯이 아야나미 레이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어째서, 울고 있는 거지?"
# by | 2008/06/06 03:43 | 번역 : 소설 (Genesis Q) | 트랙백 | 핑백(1) | 덧글(34)


